차를 마시다

첫 잔을 마시고 나니

마른 창자에 눈이 내린 듯

두 번째 잔을 마시고 나니

정신이 상쾌하여 신선이 된 듯

세 번째 잔을 마시고 나니

병든 몸 깨어나고 두통이 나아

마음은 공자가 부귀를 뜬구름 보듯 하고

맹자가 호연지기 기르듯 하네

네 번째 잔을 마시고 나니

호기가 생기고 근심과 울분이 사라져

기상은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기고

하늘과 땅을 다 받아들이고도 남을 듯하네

다섯 때 잔을 마시고 나니

색욕도 달아나고 식탐도 사라져

몸은 구름 치마 깃털 적삼에

월궁에서 흰 난새를 타는 듯

여섯쨰 잔을 마시고 나니

마음은 해와 달이요, 만물은 거적자리라

정신은 소보 허유를 마부로 삼고

백이 숙제를 종으로 삼아

하늘에서 상제께 읍하는 듯

어이하여 일곱째 잔, 반도 마시지 않아

울연히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일어나

천궁을 바라보니 바로 앞이요 봉래산은 멀어져 아스라하네

- 조선의 문신 한재 이목(李穆, 1471 ~ 1498),〈음다(飮茶)〉, 《이평사집(李評事集)》 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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