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선생님 빗자루 질 소리에 잠이 깨어 바깥으로 나갔다. 괜찮으이 더 자거라. 하얀 눈 밭에 선생님만 서 계셨다. 도로부터 가마 앞까지는 눈이 치워져 있었다. 해가 뜨기 전 푸른 새벽빛 눈밭에 선생님은 멋졌다. 선생님은 그 해 겨울이 끝나기 전 돌아가셨다.

트럭을 6시간 몰아서, 다른 산자락의 흙을 실어와서 그릇을 만들었다. 선생님의 고집이 아니었고, 그래야 그 그릇이 구워졌다. 어떤 그릇은 어떤 흙을 써야만 했다. 사과 나무를 써서 유약을 만들어야 했다. 예술가의 집착이 아니었다. 그릇공의 오랜 배움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버려진 옛 가마터를 찾아서 옛 그릇의 파편을 주워들고는 바지춤에 대충 닦고, 일일이 혀를 대어 맛보셨다. 그릇 조각에 혀를 대면, 굽기전 흙이 얼마나 질었는지, 가마 온도는 얼마나 높았던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릇아이더, 맛을 봐야 아는기라. 우리도 선생님을 따라서 많은 그릇 조각들을 맛보았다.

선생님의 모든 분청은 옛 가마터의 분청과 똑 닮아 있었다. 선생님이 그릇에 낙관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도,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그릇을 사다가 바닷물과 진흙탕에 담구어 두었다가 골동품이라고 속여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옛 그릇을 찾아, 손에 들어보고, 혀로 맛 보며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옛 그릇을 알아야 오늘 그릇을 만들고, 내일 그릇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어떤 사람들은 짧은 비명과 한낱 성공과, 거짓 깨달음을 가리지 못하고 산다. 선생님은 비명을 가리지도, 덮지도, 내어 놓지도 않으셨다. 약간의 성공과 어떠한 깨달음들을 가만이 즐거워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우리 모두에게 전각을 직접 만들어 나누어 주셨다. 세월이 복잡한 날 전각을 손에 쥐고 가만이 만져본다.

좋은 그릇은 보면 알 수 있다. 손을 뻗어 그릇을 잡으면 전율이 있다. 선생님은 그런거 없다 그냥 그릇이다 하셨지만, 그런 건 꼭 있다. 사람도 보면 알 수 있다. 입 열어 대화를 나누기 전에도 울림이 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당신을 그냥 그릇 만드는 이라고 하셨다.

눈이 온 새벽이었다. 하얀 눈 밭 위, 기다란 싸리 빗자루에 기대어서 선생님이 활짝 웃고 계셨다. 선생님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어떤 사람들의 한낱 비명과 깨달음에 세월이 복잡한 날들에는 선생님이 주신 전각을 손에 쥐고 다닌다. 어떤 것들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선생님은 평생 직접 만들어서 보여주시고, 어느 해 겨울의 끝자락에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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