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gious friendship

©Jason

제이,

너와 공항에서 인사하고 그 길로 곧장 차실에 왔어.

제이, 난 네가 내 곁에 없으면 약해지는 느낌이 들어. 내가 한 없이 약해져도, 나는 약해지지 않겠지만, 네가 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나는 약해지는 기분이 자꾸 들어. 나는 많은 것들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지만, 나는 너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 지척 가까이에.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네가 있는 곳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알아 봤어. 공항을 오가는 일은 힘든 일이야. 공항을 한 번 간다면, 그 길로 바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아. 떠나야 하는 순간에 등 돌려 돌아와야 한단 건 힘든 일이야. 너는 곧 날아 갔겠지만, 나는 너를 거기두고 온 느낌이 자꾸 들어.

네가 싱긋 웃어 보이던, 그 찬장 앞에 앉아서 음악을 조금 들어. 있지 제이, 난 내가 사는 내 집도 내 집 같지 않아. 내 형제를 봐도 내 형제 같지 않아. 내 얼굴을 봐도 나 같지 않아. 근데 여기 이 커다란 그릇장 앞에 앉으면 이 작은 차실 공간은 조금 내 공간 같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이 그릇장 앞에서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할까? 여기서 부터 삶을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한다면, 나는 조금 나 같아 질까? 나는 이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될까 나는 꽃가루 처럼 날아다니는 씨앗 처럼 또 거울을 보아도 그려지지 않는 꽃을 상상할까.

네가 다시 멀어 진다는 건 힘든 일이야. 너를 한 번 만난다면, 오랫동안은 다시 헤어지고 싶지 않아.

우정이란 건, 특히 너와의 우정이란 건 종교같지. 가까이 있기를 바라게 되는 거야.

3000년이 된 책을 읽어 그럼 좀 달라질까, 반은 모르겠고 나머지 절반은 그럴듯해. 이어서 2000년이된 책을 읽어 그럼 좀 알게될까, 절반은 틀렸고 나머지는 틀리기 어려운 말들 뿐이야.

어느 날 저녁, 지는 해를 보다가 구내식당 밥이 먹고 싶다며 한국에 온 네 손을 잡아두고 구청 구내 식당들을 떠돌며, 계획에도 없던 차실 이사를 하며, 각 천년의 책들을 멀찌감치 들춰 보다가, 나는 차실에 돌아왔어.

나는 뭘하고 있는걸까? 우리는 뭘 하고 있는걸까? 건더기가 가득해도 내 궁금증의 깊이는 모자랄 수가 없겠는데 차는 맑고 색깔 조차 없어.

왜 너는 왔다가, 돌아가는거야? 왜 나는 공항을 가고 또 돌아와야 하는거야. 왜 차는 투명하고 등 뒤의 그릇장은 둘이 들어도 쉽게 움직이지가 않는거야?

네가 곁에 없으면 나는 약해져. 나는 약해지지 않지만 금방이래도 약해질것같고 부수어질것 같고, 가벼워져서 날아갈 것 같아져. 공항에서 돌아왔어. 차실의 나무 바닥을 조심스레 밟으며 찬장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또 네 생각을 해.

오고 가는, 모든 만남과 떠남을 생각해. 나는 약해지지 않지만 금새라도 약해질 것만 같아. 차는 투명해 사람들은 우리 둘이 마주 보듯 미쳤다고 했어. 우린 사람들을 보며 웃어.

너를 또 보내고 공항에서 돌아왔어.

공항이라니. 비어있는 항구라니 말야, 제이.

어디까지 비어야하고, 어디까지 투명해져야 한단 거야?

제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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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기내 와이파이가 되는 기종이라서! 큰 마음 먹고! 와이파이를 샀는데, 이메일 5개 답장하고 나니 막상 쓸 일이 없어서 아쉽던 차에 네 메일을 받았어.

이 이야기를 길게도 할 수 있고, 짧게도 할 수 있겠지만-

어두운 기내에서 긴 글을 쓰는 건 좀 어려우니, 짧게 이야기 해 볼게.

모든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건 아니야.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 같은 사람들도 사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 뿌리라니, 우리 동물이야. 뿌리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느낌은 당연하고, 뿌리를 내리는 삶이 실현되면-그리고 잠시라도 그래보였던 순간들이 너에게 있었는데-아마 굉장히 힘들어 할거야, 그 나름의 이유로.

그보다는, 삶의 무게 중심을 지니고 사는 걸 고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 그 무게 중심은 네 안에 자리 잡을 거고, 그러면 뿌리가 있건 없건, 날개가 있건 없건, 네가 어느 나라 어느 바다를 건너고 있건간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질거야.

우리 우정은 종교와도 비슷하지. 동의해. 맞아. 내가 있는 곳에 언제든 자주 와도 돼.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대신 나 맛있는 거나 좀 많이 해주라. 에이치 마트에서 나도 재료 사와서 만드는데, 나는 너가 하는 그 맛이 잘 안나.

헤어짐은 어렵지. 헤어졌다고 생각하지마. 2000불 정도면 왕복 비행편을 살 수 있어. 그냥 그 정도만 모이면, 다시 만나면 돼. 아마 내가 당분간은 일년에 두 번정도 한국에 갈 것 같아. 헤어진게 아니야. 우린 종교 같잖아? 종교에는 이별이 없어.

어렵게 생각할만해. 삶은 어렵고, 네 삶은 더 어려웠고, 너는 더 어려운 사람이지. 이미 어려운 걸 조금 더 어렵게 생각하곤 해 넌. 물론 그래야 많은 것들이 선명해지고 오히려 쉬워 진단 것도 알아. 무거워 하지마, 더 사람들을 만나고, 더 차를 나누고, 더 해봐 제이슨.

새로운 공간으로 옮긴 건 아주 잘 한 것 같아. 고생 많이 했어.

남산 도서관 구내식당 밥이 난 되게 좋았는데, 남산 자락으로 이사를 가다니, 최고야 제이슨.

안녕! 또 보게 될거야.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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