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러스 핸드 타올

©Jieun

제이슨,

그 날 오빠 소식을 듣고, 여권만 들고 그 길로 공항으로 갔어.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빠른 표를 구해서 두 번 스탑오버를 하고 18시간을 날았어. 오빠는 인사도 남기지 않고 떠났어. 오빠가 힘들단 건 알고 있었어. 나와 그 날, 며칠 전에도 통화했었거든, 말 끝이 조금 흐리고 희미했지만, 그래도 쓰고 있던 책 탈고를 하고 있다고 했고, 얼마간은 여행도 다녀왔다고 했어.

오빠는 인사도 없이 그냥 갔어. 그리고 나는 그 소식을 새벽 2시에 엄마에게서 들었어. 공항으로 가는 우버안에서도, 공항 델타 카운터에서도, 델타에는 표가 없어서 대한항공으로 옮겨가 그 곳에서도 낮고 조용히 숨을 쉬며 집중해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귀가 잘 들리지 않았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어.

제이슨, 관념이 없다면 말야. 우리에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체계가 없다면 말야. 나는 그 날 15시간을 어떻게 날아와야 했을까? 산다는건 걷는 것이고, 걸을 때 방향을 모르면 어떡할까. 방향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맞아. 하지만, 방향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잖아. 산불이 나면, 토끼도 반대로 걸어갈거야. 늑대도 곰도, 물이 있는 곳으로 때때로 향해서 물을 마셔야 하잖아. 관념이 없으라니, 유령 처럼 살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해?

자유롭게 사는 것과, 속박받지 않는 것과, 걸어가야 할 곳을 아는 것과, 멈추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 것과 그런 앎이 없을 수 있어?

휴스턴과, 샌프란스시코, 도쿄에서 갈아타야 했어.

내가 국내선에는 티내지 않고 집중하고 있었어. 일부러 끼니도 챙기고, 물도 마시고, 평소엔 먹지도 않던 과자들도 먹으면서 버텼어. 그런데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니까, 동양인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빠 생각이 나면서  모든게 무너지면서 울기 시작했어. 게다가 비지니스여서 사람들이 지나쳐 가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그러고 있을 순 없었어. 온 비행기에 오빠가 남기고 간, 내가 소화해내지 못한 슬픔을 토해내고 있을 순 없었어.

승무원 언니가 나누어준, 시트러스 향이 나던 따뜻한 핸드 타올을 얼굴에 감싸고 눈물을 참는데, 눈물이 참아지는 것도, 울음이 참아지는 것도, 그리고 들썩이는 어깨가 잦아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 눈을 감고 얼굴을 감싸 안고 붉은 검정에 갖혀서 끅끅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만져왔어. 승무원 언니였는데, 괜찮으면 자기가 옆에 잠깐 앉아도 되겠냐며, 일단, 비행을 할 수 있을지 물어왔어.

제이슨.

태평양을 건너는 세벽 2시의 비행편에 사람들이 타는 무렵이 되면 승무원들은 얼마나 바빠. 이코노미면 이코노미, 비지니스와 일등석도 다 각각의 이유로 바빠. 피해주고 싶지 않았어. 참고 싶었어. 지우고 싶었어. 나머지 모든 사람들 처럼, 기내 잡지를 뒤적이거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고 도로 집어 넣으며 부산스럽고 싶었어. 실제로 괜히 가방에서 양말을 꺼내보기도 했어. 손에 그걸 쥐어보고 있기도 했었어 한동안.

비행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내가 팟- 하고 웃음을 터뜨렸어. 내가 비행기를 운전해야하는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냥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건데, 앉아있는 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요. 미안해요. 가족이 죽었어요. 또. 가족이 죽었어요. 네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한국에 가는 길이예요. 가야만 해요. 내릴 순 없어요. 그리고, 울음을 참아 보겠어요.

승무원 언니가 나에게 물어왔어. 사과할 필요 없어요. 정말 슬픈 일이예요. 뭐라고 위로할 수 있을지, 무슨 말로 입을 떼야할 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손님들은 슬픈 이유로 긴 비행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이해해요. 그저, 비행기는 높은 고도에 있게되고, 기온이 내려가거나 꽤 소음이 큰 환경인데, 그것이 괜찮을지 확인차 물어본거예요.

식사가 나왔어. 생선 요리였는데, 열심히 먹었어. 승무원 언니가 그랬어. 식사하기가 괜찮겠냐고, 다른 메뉴를 원하면 준비해주겠다고, 할 수 있다면 식사를 조금이라도 먹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선 요리는 맛있었어. 연어, 크림, 레몬, 그런거 있잖아? 세비쳬 전채 그런거. 모닝롤, 그런거. 버터. 언니가 디저트를 주면서 또 물어왔어. 디저트를 더 먹고 싶으면 알려 달라고. 그런거 있잖아 초코 무스 케이크.

따뜻한 물을 몇 번 마시고, 기내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잠에 들기 시작했어. 언니가 다시 다가왔어. 잘 있냐고. 내가 싱긋 웃으면서, 응, 고마워요. 신경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다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 그 때 눈물샘을 쥐어서 잠글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어. 언니에게 미안했고, 사람들이 불편할까봐, 오빠가 내가 이러는 걸 싫어할 것 같았어.

언니가 조그려 앉아서 내 무릎에 손을 가만이 올리고, 괜찮다고 했어. 울어도 된다고. 신경쓸 필요 없다고.

한참을 울었어. 조용히 울었어. 슬퍼했어. 온전히 슬퍼하며, 슬픔으로 울었어. 사람들도 알아채는 것 같았어. 수군거린다기보다는 안타까워 하는 것 같았어.

기장 아저씨가 오셨어. 수석 사무장이랑 같이 내 자리에 왔어. 개인적으로 슬픈 일을 겪고 있다고 들었고, 힘든 비행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정말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리고 이 힘든 시간에도 비행을 해야 하고, 그 비행을 우리 항공사가 해드릴 수 있어서 겸허하게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오늘 1등석에는 다음 비행을 위해 공항으로 돌아가는 기장 몇 명과 승무원들만 탑승하고 있어요. 1등석으로 옮기시고 싶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사복 차림이지만, 우리 동료 기장들과 승무원들이 선생님 곁에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는 손님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그리고 사람들 곁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비행할 수 있게 도움 드리는 것이예요.

일등석실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는데, 사복 차림의 한 사람이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악수하면서, 소개를 해왔어. 군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민간 항공사로 옮겨왔대. 다음 비행이 있어서 일본으로 향하는 중이랬어. 많은 동료들을 전쟁 속에서 잃었고, 아주 조금은,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게 뭔지 안다고, 말 해왔어. 또 다른 한 사람은 곁에서 조심스럽게, 자기도 가족을 잃은지 오래되지 않았다며, 얼마나 슬프고 힘들지 상상할 수 없다고 해왔어. 그리고 두 사람이 말해왔어. 언제든 울어도 좋고, 언제든 우리와 이야기 나누어도 좋고, 또 보드게임을 함께 해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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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관념이 없을 수 있어? 관념이 없는 곳에서, 관념 없이 살 수 있어? 정신과 육신을 가지고, 숨을 들이 내쉬는 속에서, 그리고 그 정신과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펼쳐지는 모든 순간들 속에서, 관념없이 살  수 있어?

제이슨, 난 그러지 못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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