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
추운 도시에서 자랐어요. 그렇다고 추위가 익숙하다고 할 순 없지만.. 추위를 많이 겪어 보았어요.
무언가를 자주 겪은 것과 무언가에 익숙한 것은 다른 것 같아요. 그쵸?
그래서 생긴 버릇인지 모르겠지만,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추위의 전율이 꽤 싫지만은 않아요.
그리고 겨울의 한복판, 추위의 전율이 가장 강하게 오르는 날에 저는 가만이 봄의 기척을 찾아요.
반드시 가장 추운 날은 가장 봄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역의 팔괘도 그렇잖아요? 양의 기운이 가득 찬 노양은 이내 곧 소음으로 바뀌어가고, 그렇게 바닥부터 다시 차오르겠지요.
며칠 많이 더워서, 도망치듯 살았어요. 급히 말차를 말아 마시며, 얼음에 녹차를 타마시고, 진득하게 다관에 물 부어 잎차우림을 못 했어요. 바빴어요. 정말 그렇게 바빴던가요? 잘 모르겠어요.
이 더운 여름의 복판에서, 하늘을 봤고, 가을을 슬쩍 봤어요. 그래서 홍차를 마셨어요 오늘은.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멋진 모미지 분청 숙우가 생겼는데, 분청 빙렬에 찻물이 들어가는 걸 보고 싶었어요.
이유가 어찌 되었건, 헝겊을 깔고, 주전자와 숙우를 놓고, 커다랗고 작은 잔을 놓아 차 내려 마시는 건 평안한 행위예요. 그쵸?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다관에 홍차를 내려 마셔요. 자주 내려 마셔도, 익숙해지기 보다는, 늘 설레는 마음 뿐이예요.
어릴 땐, 추운 도시에서 자랐어요. 오늘은 차와 주전자에 둘러 쌓여 있지만, 삶이 따뜻하기만한건 아니예요. 무언가를 자주 겪었다고, 그것이 익숙해지고 또 괜찮은 것만은 아니예요, 그쵸?
삶을 자주 겪었어요, 그리고도 삶에 익숙하지 못해요. 오늘도요. 아마 내일도요.
차 마시는 행위는 평화로워요. 평화로우시길 바라요.
평화를 위해서 사시되, 평화롭게 사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