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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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도 맨발로 흙덩이에 올라 발을 깊숙히 밀어 넣으면, 온 몸에 차가운 흙기운이 올라왔다. 시원하쟤? 선생님과 마주보고 정강이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꼬박을 밀면 행복했다. 선생님도 그런 우리를 예뻐하셨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 같았다.

선생님을 따라서 우리도 매일 새벽 다섯시에 일어났다. 흙을 퍼오고,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베고 쌓아, 가마 안에 그릇을 가득 채워 볼을 올리는 것만 생각했다. 1년의 매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선생님의 60년은 매일 그랬다. 흙, 물, 가마, 불.

가마에 불이 사그라들면, 열기가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선생님은 이미 가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다완을 꺼내 오고 있었다. 다완은 다른 그릇에 비해 더 많은 양이 검수 과정에서 깨어졌다. 다완을 옆으로 길게 늘어놓고, 거의 대부분의 다완은 선생님 손에서 깨어진다고 봐야 했다. 재벌구이가 끝난 그릇만 깨는 것도 아니고, 초벌구이가 끝나도, 심지어 반건조 중에도 깼다. 굽을 깎다가도 깼다. 깨기 위해서 만드는건가 싶은 순간도 많았다.

늘 말씀하셨다. 빚을 지는 거라고. 사람들에게 그릇을 파는 것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는 거라고. 당신은 예술쟁이가 아니라고. 그릇공일 뿐이라고. 그릇일 뿐이라고. 사람덜헌테 빚을 지는기라. 그 빚을 더 잘 기억하기위해 낙관을 찍는거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멋지다고 막연히만 생각했다.

낙관을 찍는 날이면, 선생님은 깨끗한 하얀 작업복을 입고 구들방에 다리를 펼쳐 벌리고 앉아서 다완을 감싸안고 빠르고 깊이 낙관을 찍으셨다. 우리는 말 없이 다완을 옮길 뿐이었다. 그릇을 만드는 과정은 때로 즐겁지만, 엄숙하고, 또 간절해지곤 했다. 낙관을 찍는 날은 거룩한 느낌이었다. 내가 언젠가 거룩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은 빚을 더 잘 갚기 위해 찍는거라 생각하라 하셨다. 그릇인기라. 거룩한 것이 아니라고.

거칠고 빠르게, 세련된 그릇을 만드시는게 선생님만의 특징이었는데, 낙관 위에 유약이 덮히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셨다. 당신 이름을 선명히 남기고 싶어하시기 보단, 빚을 선명하게 지고 싶으셨던 것 같다.

지금도 사람들은 선생님 다완을 들고 선생님의 전시장에 온다. 선생님의 따님-역시 그릇을 만드는-과 차를 나누고, 선생님의 그릇으로 차를 마셔온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남기고 간다. 주말에도 보았다. 바다를 건너 선생님 다완을 들고 온 사람들과, 선명하게 찍혀있던 선생님 낙관들을.

빚에 대해 생각했다. 만남과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추석이다. 우리는 선생님 사과 밭에 모이기로 했다.

선생님이 그립다. 약속을 지키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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